지난호보기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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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싶은가요?”
인간의 기억에 대한 특별한 시선
「해마를 찾아서」
“기억은 괴물이다. 당신은 잊어버리지만 기억은 잊지 않는다. 모든 것을 저장해 둔다. 당신을 위해 보관하고 감추어 놓는다. 그랬다가 당신의 의지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다시 꺼내 놓는다. 당신은 당신이 기억을 소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기억이 당신을 소유하는 것이다.” - 존 어빙.『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중에서
우리 모두는 매일 기억과 씨름하며 살아간다. 당시엔 분명히 뇌리에 박혔으리라 생각한 정보나 생각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거나 다른 정보와 뒤엉킨다. 기억이 나지 않아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지만 일상에서 늘 예기치 않게 또 빈번하게 발생하곤 한다. 대체 기억은 무엇이기에 우리 삶의 곳곳에 침투해 영향을 미치는 걸까? 작게는 짧은 시간을 지체시키는 정도에 그치지만, 중요한 시험이라든지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도 영향을 미치니 우리 모두 ‘기억’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가 없다.
기억이 중요한 까닭은 무엇보다 나의 기억이 곧 자기 정체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을 잃는다면 내가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좋아하며 누구와 관계가 있는지 알 수없다. 그렇다면 이 기억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을까? 노르웨이의 기억에 대한 책 『해마를 찾아서』에 따르면 기억은 대뇌피질 여러 곳에 저장돼 있지만, 서로 다른 경험들을 저장하고 온전한 기억으로 종합하는 역할을 하고, 우리 자신을 한 독특한 인간으로 만드는 모든 경험과 감정을 연결하는 곳은 바로 뇌의 ‘해마’에 있다. 이름과 모양이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 동물이면서 뇌에서 가장 흥미로운, 기억이 형성되는 부분인 해마, 고작 지름 1센티미터, 길이는 5센티미터에 불과한 이것이 모든 경험과 기억, 감정을 연결하는 조정자라니 인간의 뇌는 참으로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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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기억은 완벽할 수가 없으니까요!”
현대의 뇌과학 연구 실험의 성과로부터 이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많은 방법들을 알게 되었다. 기억력 천재가 되는 법을 소개하는 책도 매년 잊을만하면 나오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방법론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외려 우리가 인생에서 마음을 다하는 경험을 하면,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음을 알려 준다. 그 기억이 완전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말이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기억의 불완전성, 이것이야말로 기억의 속성이므로 완벽한 기억에 대해 우리가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신경심리학자이자 기억 연구 전문가인 윌바 외스트뷔, 그리고 개념사 연구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힐데 외스트뷔라는 공저자 자매는 우리의 기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처음 생겨났을 때의 경험을 그대로 다시 가져오지는 못하지만, 왜곡되고 미화되고 재구성되고 꾸며지더라도 기억은 이론상으로는 죽을 때까지 우리 안에 존재할 수 있으며, 기억에 대한 현대의 주도적인 이론 중 하나는 해마가 기억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연출가처럼 하나로 모은다는 것이다. 즉 기억이 깨어나 살아나면, 해마가 다시 모든 요소들을 장악하고 이들을 함께 조정하며, 이때 동시에 원래의 세부 요소들은 사라지고 우리가 세상에 대해 아는 것들이 튀어나와 그 빈자리를 채운다. 그리하여 자기 일생을 회상할 때, 우리는 인생 원고를 쓰는 것이기도 하고 개별 기억의 세부를 만들어 꾸미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존 어빙의 『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의 인용문, “당신은 당신이 기억을 소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기억이 당신을 소유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해마를 찾아서』 서두를 장식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바다에 사는 생물과 우리 뇌 사이의 거리는 멀지만, 바다의 해마와 뇌의 해마 사이에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새끼들이 바다에서 헤엄치는 데 위험이 없고 그들이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배에 알을 품는 해마 수컷 처럼, 뇌의 해마 역시 무언가를 품는다. 그건 바로 우리의 ‘기억’이다. 해마는 기억이 크고 강해져서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지키고 꼭 붙잡아 둔다. 해마는 말하자면 기억을 위한 인큐베이터이다.” - 『해마를 찾아서』
“기억의 진주목걸이에서
가장 반짝이는 진주알을 골라보세요.”
우리가 기억의 속성 자체가 지극히 불안정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기억의 특징은 무수한 망각이며 매일같이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는 완벽에의 요구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은 기억 속에서 대부분 사라진다. 출근길에 매일 버스를 기다린 일, 장보러 다녀온 일, 소파에서 오후를 보낸 일 등 모든 것이 기억에 저장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기억에 대해 자신이 없거나 우울감을 느끼는 많은 이들에게도 기억에 대한 다른 시각이 도움이 될 것이다. 기억은 끊임없이 최적화시켜야 하고 완벽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행복과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라는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하물며 이 노르웨이 책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망각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망각은 우리 편이어서,
(잊어버림으로써) 기억의 진주목걸이의
진짜 진주알이 될 하이라이트 몇 가지를
골라내도록 해 준다."
가장 빛나는 특별한 기억들도 이미 망각의 영향을 받았으며 제자리에 남은 것은 중요한 요소와 큰 틀뿐, 나머지는 우리의 기억이 유연하게 재구성하며, 그러한 재구성이 곧 기억의 속성 중 하나라는 얘기다. 우리가 가진 수많은 기억들도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와는 달리 얼마든지 왜곡되고 변형되었을 수 있다. 같은 사건을 경험한 두 사람의 세부적인 기억이 다른 것도 그런 연유다.
이제 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싶을까. 마음을 다해 행복한 시간을 즐기는 것이 내 기억의 진주목걸이에서 가장 빛나는 진주알을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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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민음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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