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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할 때
알아야 할 것
정부에서는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채용을 보다 공정하게, 그리고 타당하게 하기 위해 직무능력중심 블라인드 채용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공정하다는 것은 직무능력 이외의 차별적 요소의 영향을 배제한다는 뜻이고, 타당하다는 것은 우수 수행을 위한 업무능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위해 채용 담당자를 위한 표준 매뉴얼과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표준 매뉴얼에서 상세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는, 그러나 채용 담당자가 반드시 검토해야 할 사항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용어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들 언론이나 일상생활에서 줄여서 표현할 때는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야말로 ‘깜깜이 채용’이라는 인식을 줄 우려가 있다. 정부에서 추구하는 정책의 정식 이름은 ‘직무능력 중심 블라인드 채용’이다. 즉, 지원자에 관한 모든 정보를 가리고 채용을 하자는 게 아니라, 직무능력과 상관없는 것은 블라인드 처리하고 직무능력과 유관한 것만 보고 채용을 하자는 취지이다.
01   직무능력과 유관한 항목?
여기서 그렇다면 과연 어떤 항목들이 직무능력과 유관한 항목인가 하는 판단이 문제가 되는데 이게 사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는 현실적으로 ‘안면타당도’ 즉 구직자를 포함한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직무능력과 유관하다고 여겨질 만한 것들을 직무능력과 유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직무능력과 유관한 항목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100년 이상 된 산업조직심리학의 연구결과는 상식적 판단과는 다른 스토리를 들려준다. 한 예로 업무능력과는 별 관계가 없을 것 같은 공간지각 능력이나 작업기억 용량 등이 많은 직무에서 업무 성과와 관련이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고도화된 데이터 기반 선발 도구라 할 수 있는 ‘바이오데이터’(biodata, ‘biographical data’의 줄임말로 지원자의 생활사 자료에 대한 설문 자료를 분석해 여러 가지 성과 지표를 예측하는 도구임)를 활용해 보면, 예를 들어 즐겨듣는 음악의 종류가 업무능력과 관련 있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일단 현실적으로는 현재 매뉴얼이 추구하는 대로 직무능력과의 유관성은 상식 중심으로 판단해야겠지만, 빅데이터 시대에는 데이터를 분석해 입증된 새로운 발견을 적극 도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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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채용은 교육하기 어려운 것에 초점을 맞춰야
직무능력중심 채용에 대한 상식적 이해, 또는 거칠게 말해서 피상적 이해는 필기시험이나 면접도구 개발에 부작용을 미치기도 한다. 여기에는 ‘직무능력을 검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 할 일을 직접 시켜 보는 것이다.’하는 통념적 원리가 추가적으로 작동한다. 이는 재직자의 직무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장면이라면 거의 논의의 여지가 없는 진술이다. 그러나 채용 과정에서도 ‘실무 과제’를 수행하게 하는 것이 과연 능사일까?
필자가 2000년대 초 해외 유학에서 돌아와 처음 맡았던 프로젝트는 모 카지노의 딜러 선발 개선 프로젝트였다. 드라마 올인의 송혜교, 트라이앵글의 백진희가 연기했던 그 딜러 직무에서 우수한 성과를 낼 지원자를 선발할 수 있도록 채용 프로세스와 선발 도구를 설계하는 과업이었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채용 과정에서 작업표본검사(work sample test)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딜링 테스트를 하게 되리라 하는 예상을 하고 첫 미팅을 갔다. 그런데 예상외로 카지노에서는 딜러를 선발할 때 가장 대표적인 작업표본검사인 딜링테스트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이유를 질문하니, 딜링은 어려운 게 아니어서 정상적 지능을 가진 사람을 뽑아서 두어 달 가르치면 누구나 숙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 채용 과정에서 어떤 테스트를 해야 하느냐고 질문했더니,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필자는 직무능력중심 블라인드 채용 관련 간담회에 여러 차례 참석하면서 참석자에게 이 일화를 여러 번 들려주었다. 요는, 채용에서는 교육을 통해 쉽게 바꿀 수 있는 항목을 평가해서는 안 되고, 교육을 통해 변화시키기 어려운 속성을 중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매뉴얼에 이 부분이 언급은 되고 있으나, 이를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채용담당자들이나 인사 담당 임원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그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꽤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는 면접관 교육에서도 충분히 강조해야 할 포인트다. 어떤 이동통신 회사의 팀장은 자기 회사의 대리점에서 3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한 지원자를 우수한 역량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고 좋은 점수를 주어 채용했다. 그 회사의 복잡한 요금 제도나 현장에서의 트러블 슈팅 요령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그 지원자를 뽑은 영업 관리 본부의 반응은 달랐다. 그 지원자가 갖고 있는 상대적 강점은 입사 후 2개월 만에 다 날아가 버리고, 오히려 다른 입사동기만 못한 수행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입사 후 금방 배울 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는 지원자를 선발했다가 후회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어떤 철강 유통회사는 굴지의 P사에서 인턴 2개월 경험을 한 지원자를 선발했다. 철강 관련 제품의 종류와 규격 등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 지원자의 우위는 입사 2개월 만에 증발해 버렸다. 울산의 어떤 공장에서는 아르바이트로 거의 1년 가까이 근무한 지원자를 생산직 정규사원으로 선발했다. 각 공장의 위치와 주요 생산품, 공장 내 식당이나 매점, 병원 등의 위치를 잘 알고 있어서 금방 적응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뽑고 보니 근무 태도가 불량해 후회한 사례도 있었다.
03   당장의 직무지식보다 중요한 것
사례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채용 과정에서 직무 상황과의 유사도가 높은 필기시험, 면접도구를 적용하는 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통념적으로는 유사도가 높아야 채용이 공정하고 타당할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게 현실이긴 하다.
그러나 한 단계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채용하는 기관, 산업과 유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과제에서는 재직자, 유경험자가 더 우수한 수행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채용에서는 장기적 성장 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므로 채용하는 순간의 직무 역량보다는 학습 능력을 잘 평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은행업에서 사람을 뽑는다면 같은 금융업종인 증권업이나 보험업의 맥락에서 문제를 내는 것이 좋다고 산업조직심리학은 권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구글의 인재 선발 기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글은 산업조직심리학에서 내놓은 연구결과들을 기반으로 자사에서 많은 실험을 수행하고 결과를 분석한 바 있다. 구글이 선택한 인재 선발 기준은 그 중요도 순서대로 쓰자면 종합인지능력(문제해결능력), 리더십, 구글다움(googliness), 역할 관련 지식과 경험 이렇게 되어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역할 관련 지식과 경험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나머지 역량이 강한 사람을 뽑아야 기존 업무를 개선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 구글의 결론이었다. ‘블라인드 채용’이 자칫하면 역할 관련 지식과 경험의 평가에 치우치기 쉬운데, 채용 담당자가 항목만 잘 정하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04   ‘해봤다’ vs ‘잘했다’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 볼 문제는 ‘경험자 우대’ 현상이다. 물론 경험이 있는 사람이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 초기에는 빠르게 적응할 가능성이 크고,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는 그 일을 좋아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큰 지원자 풀을 놓고 보면 생각해 볼 문제점이 있다. 특히 신입사원 채용에서는 경험이 있다고 해도 한두 번 또는 단기적 경험일 경우가 많은데 그게 채용에서 가점을 많이 줄 만큼 과연 결정적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마치 유아 축구 선수를 선발하는 장면에서 공 한두 번 차 본 유아를 우선적으로 뽑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 비유를 통해 생각해 본다면 장기적으로 축구부원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을 잘 선정하고, 당장 공을 몇 번 차 본 유아를 뽑기보다는 성공 요인을 두루 갖춘 유아를 뽑는 것이 훨씬 좋은 축구단을 구성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굳이 공을 차 본 경험을 보겠다면 ‘경험했다’를 볼 게 아니라 ‘잘했다’를 기준으로 해야 할 것이다.
05   한계역량은 과락 적용, 차이역량은 합산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문제는 각 전형 요소의 합산 문제이다. 대부분 조직이 소위 허들 방식으로 채용 과정에서의 점수를 처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서류전형, 필기전형, 면접전형을 각각 독립적인 전형으로 하고 단계별로 제로베이스에서 점수를 적용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타당한 방식인가 검토해 보자.
이런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주는 사례로 양궁 대회 진행 방식을 들 수 있다. 대한민국은 오래전부터 양궁 강국이었다. 이전 방식은 대회에 출전한 모든 선수가 많은 화살을 쏘고, 여러 라운드의 점수를 합산해서 종합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진행한 대회에서는 한국 남녀가 금·은·동을 휩쓰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방식이 재미없다고 본 국제양궁연맹은 라운드마다 독립적으로 점수를 비교하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바꾸고 이전 라운드 점수를 반영하지 않음으로써 한국의 메달 획득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그래도 한국 양궁의 실력이 워낙 탁월하니 상대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하지만, 한발이라도 삐끗하면 조기 탈락하거나 금메달 획득에 실패할 가능성을 항상 염려하게 되었다.
많은 회사에서 허들 방식을 적용하는 이유로 앞 전형 단계에서 좋지 않은 점수를 준 지원자에게 역전의 가능성을 최대한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생각해 보면 앞 전형 단계에서 좋은 점수를 준 지원자의 우위를 없애버리는 선택이다. 다시 말해 우수한 역량을 가진 지원자가 실수로 탈락할 가능성을 더 많이 열어 주는 방식인 것이다.
보다 깊게 생각해 보자면, 전형 단계별로 합산 여부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평가 항목의 특성에 따라 합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채용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떤 평가 항목은 합격·불합격으로만 평가하고, 어떤 평가 항목은 점수를 내어 총점에 합산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평가 항목의 점수와 업무 성과가 정비례할 것으로 기대되는 항목은 총점에 합산하고, 최소한의 기준만 통과하면 되는 평가 항목의 점수는 총점에 합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 한계역량과 차이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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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기업 엔지니어 채용을 위한 면접관 교육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입 엔지니어를 뽑는 데 전공 시험을 볼 것인가를 두고 면접관들 사이에 의견이 갈렸다. 한쪽은 엔지니어가 전공을 모르고 어떻게 일을 하느냐는 입장이었고, 반대쪽은 어차피 들어와서 새로 다 배워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필자가 ‘저는 인문계를 졸업했고, 회사에서 가르쳐 주시면 열심히 배울 준비가 돼 있는데 이 회사의 엔지니어가 될 수 있을까요?’ 하고 질문했더니 모두 이구동성으로 안 된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물리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어느 면접관이 말씀해 주셨다. 이에 중학교 때 ‘F=ma’라든지 좀 배운 게 있다고 했더니 다른 면접관이 열역학법칙을 몰라 어려울 거라고 답하셨다. 그래서 필자는 ‘바로 그겁니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꼭 알고 들어와야 하는 것, 그걸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반드시 검증하시되 입사 후 배워도 될 것을 미리 알고 있는지 검증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수 있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이처럼 신입사원 채용에서의 전공 지식은 당락만 적용하고, 총점에 합산하지 않는 게 타당할 경우가 많다. 또 예를 들어 영업사원에게 있어 제품 관련 지식은 일정 정도 허들을 넘지 못하면 영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꼭 테스트하기는 해야겠지만, 제품 관련 지식수준과 영업 성과가 꼭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품 관련 지식 점수를 총점에 합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여기서 허들만 넘기면 되는 역량을 한계 역량(threshold competencies), 점수 차이가 있으면 성과에도 차이를 낼 수 있는 역량을 차이 역량(differentiating competencies)이라고 부르는데, 정리하자면 한계 역량은 과락을 적용하고 차이 역량은 총점에 합산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상 블라인드 채용을 실무에 적용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몇 가지 살펴보았다. 기존의 표준 매뉴얼을 충실히 적용하면 공정성 이슈는 충분히 다룰 수 있겠지만, 좀 더 욕심을 내어 조직에서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고 성장할 인재를 선발하고자 한다면 그 이상의 검토와 고려가 도움이 될 것이다.
(주)비에스씨는 2015년부터 한국산업인력 공단이 주관하는 능력중심/블라인드 채용 컨설팅 전문기관으로 선정되었으며, (주)비에스씨가 컨설팅을 제공한 한국전력거래소 외 다수 공기업이 채용 경진대회에서 우수 사례로 선정되어 고용부장관상 및 기재부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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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철
한국행동과학연구소 본부장 역임
(주)비에스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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