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보기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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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 짙푸른 바다와
아침 해가 솟구치는
소등섬
광화문에서 정남쪽으로 내려오면 마주하는 그곳
깊은 한(恨)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담백하게 그려내면서도 긴 여운을 남긴 소설 『선학동 나그네』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의 모태가 됐다.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선학동 옛 포구는 간척지로 변했지만, 천년학은 옛정을 못 잊어 여전히 날아들고 있다. 장흥 출신 소설가 이청준 선생이 엄마 품처럼 늘 그리워했던 남도의 정취를 느끼러 천년학이 날개 짓하는 그곳으로 떠나보자.

편집실  사진 장흥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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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창해에 탕탕(蕩蕩)한 물결이라,
백빈주 갈매기는 홍요안에 날아들고…”
여자가 마침내 소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내는 그 여자의 오장이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 속에 문득
자신도 그것을 본 것이다. 사립에 기대어
눈을 감고 가만히 여자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사내의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온
옛날의 그 비상학이 서서히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 이청준, 『선학동 나그네』 중에서 -
산과 들,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정남진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에는 ‘정남진(正南津)’이 있다.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으로 내려오면 도착하는 나루라는 뜻이다. 정남진은 강릉 ‘정동진’이 광화문에서 정동쪽으로 내달으면 도착하는 나루라는 유래를 가진 것에 착안해 2000년대 초반부터 장흥군이 발굴한 지역 이미지 브랜드다. 2003년 정남진 표지석 설치 및 소공원 조성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2005년 정남진 상징 조형물 건립 등을 거치면서 ‘장흥=정남진’이란 등식이 통용될 만큼 장흥을 상징하는 말로 자리 잡아 왔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장흥군은 정남진이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서울 정남쪽 바닷가 또는 나루터(津)인 장흥의 지리적 위치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남쪽의 가장 따뜻한 지방으로서 할미꽃, 동백꽃, 철쭉꽃 등 봄꽃의 시작을 알리는 봄의 길목을 상징한다. 특히, 북쪽의 가장 추운 중강진과 일직선으로 마주하고 있어 “남북화해와 민족통합을 상징한다”라는 군청 홈페이지의 스토리텔링은 무릎을 탁치게 한다.

위쪽으로 화순, 영암군과 경계를 이루고 동서 양편으로 강진, 보성군과 어깨동무하고 있다. 득량만을 사이에 두고 고흥군을 마주 보며, 남쪽으론 완도 고금도를 거쳐 멀리 청산도까지 내다본다. 호남 5대 명산 중 하나로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천관산’, 5월이면 철쭉이 온산을 붉게 물들이는 제암산, 영산강, 섬진강과 더불어 전남 3대 하천으로서 남해로 흘러가는 1급수 ‘탐진강’, 키조개, 석화(굴), 매생이, 전어 등 다채로운 수산물을 즐길 수 있는 청정해역, 표고버섯의 주산지이자 1등급 한우로도 유명한 정남진 장흥은 산과 들,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고장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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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 전망대
은빛 억새 갈아입고 덩실덩실 춤추는 천관산
월출산, 내변산, 추월산, 내장산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으로 대접받는 ‘천관산(天冠山)’은 다양한 모양으로 솟아 있는 기암괴석이 마치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 사이에 있는 해발 723m의 산으로 옛적에는 지제산(支提山), 천풍산(天風山) 등으로 불렸다. 정상에 상서로운 기운이 흰 연기처럼 피어오른다고 해 ‘신산(神山)’이라고도 부른다.

천관산이 국내 최대 규모의 천연 동백 군락지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가다 보면 ‘천하제일 천관산 동백숲’이라는 대형 표석을 만날 수 있다. 천관산 동백숲은 2006년 4월 한국기록원의 국내 최대규모 동백숲 기네스 기록에 오르기도 했다. 2만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생하고 있는데,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푸른 숲 사이로 밤하늘 별처럼 붉게 빛나는 동백꽃은 오직 천관산만이 간직한 절경이다.

장흥군 회진면 앞바다에 오동통 살찐 가을 전어가 올라오기 시작할 때면,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오듯 장흥의 풍성한 맛과 멋을 즐기러 방방곡곡에서 발길이 이어진다. 장흥의 터줏대감 천관산은 어느새 은빛 억새로 옷을 갈아입고 가을바람에 덩실덩실 춤을 춘다. 매년 10월이면 기암괴석이 해와 달을 벗삼아 가을을 노래하는 ‘천관산 억새제’가 열린다. 연대봉에서 환희대까지 이어지는 1,320천㎡(40만 평) 억새평원과 그 너머로 아득하게 펼쳐진 다도해, 저 멀리서 수줍게 고개 내민 한라산 풍경은 낭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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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 억새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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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만 해도 장생하는 ‘편백숲 우드랜드’
하루하루 쫓기며 사는 일상에서 벗어나 단 한 번만이라도 자연의 싱그러움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쉴 새 없이 내뿜는 이곳을 강력하게 권한다. 장흥읍 억불산 자락 100ha에 40년생 이상의 아름드리 편백나무 숲속에 있는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는 장흥군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대표 명소 중 하나다.

친환경 자재로 지은 ‘생태건축체험장’과 목재 문화 전반을 보고 체험하는 ‘목재 문화체험관’, 억불산 정상과 연결된 무장애 데크로드 ‘말레길’, 힐링과 휴식의 장 ‘치유의 숲’, 천일염과 편백으로만 구성된 온열 치유시설 ‘편백소금집’, 다양한 난대수종을 관찰할 수 있는 ‘난대자생식물원’ 등이 조성돼 있다.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마음껏 호흡하며 숲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지친 심신이 치유되는 듯하다. 코스도 다양해 각자에게 맞는 산책로를 즐길 수 있다. 또 한옥, 목조주택 등 다양한 펜션형 체험장이 있어 아토피 등 환경성 질환을 치유하고, 휴양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어 많은 이들이 애용하고 있는 건강휴양촌이다.
※ 편백숲 우드랜드 홈페이지: www.jhwoodland.co.kr
엄마 내음이 그리워 먼바다로 떠난 소설가
소설가 이청준(1939∼2008) 선생이 나고 자란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는 70년대 간척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전형적인 갯마을이었다. 마을 뒷산에 참나무가 유난히 많아 진목(眞木)마을로 불렸다. 중학교 때부터 광주로 유학을 떠났고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문학 활동을 했으니 그가 실제로 장흥에서 보낸 유년 시절은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가정교사로 전전하며 굶는 게 다반사였고, 서울대를 다닐 때는 밤마다 강의실 바닥에 숨어 쪽잠을 잤다는 그에게 ‘가난’은 삶의 고됨을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홀어머니와 함께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 장흥은 그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득량만이 내려다보이는 진목마을 언덕배기는 그의 소설 『눈길』을 비롯한 여러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늘 밭일을 하던 곳이다. 1994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밭을 묘지로 조성해 모셨다. 소설가는 자주 묘 주변을 서성이다 잔디에 앉아 득량만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다가 자신도 이곳에 묻혔다. 이청준의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은 이곳을 ‘이청준 문학자리’로 조성해 그를 그리고 있다.

이청준 선생 생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선학동 마을은 그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천년학>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연작소설 《남도사람》은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새와 나무〉, 〈다시 태어나는 말〉 등 총 5편으로 구성돼 있고, <선학동 나그네>는 <서편제>의 뒷이야기를 풀어낸다. 선학동 벌판 위에 세워진 선술집은 남녀 주인공이 마지막 만남을 가진 장소다. 높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메밀꽃이 하얗게 핀 가을날, 영화 속 오누이의 애틋한 만남을 떠올리며 또 다른 선학동 나그네들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스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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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소설문학길
문장가들의 발자국 따라 습작 여행
장흥에는 『눈길』, 『서편제』 등으로 유명한 이청준 선생만 있는 건 아니다. 소설 『녹두장군』의 송기숙, 아동문학가 김녹촌 등을 비롯해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한강의 부친으로 더 잘 알려진 한승원 작가,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됐을 만큼 유럽에서 더 유명한 이승우 작가도 이곳 출신이다. 현 인구 4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지역에 현역 등단 작가만 120여 명에 달한다는 중앙일간지 기사는 놀라움을 자아낸다.

장흥군은 테마 여행 코스로 장흥을 대표하는 문학가들의 흔적과 문학세계를 느낄 수 있는 ‘문학 명소 투어’를 소개하고 있다. 코스는 ▲득량만 소설길 ▲탐진강 시의길(1코스) ▲탐진강 시의길(2코스) ▲눈길 ▲정남진 문학탐방길 ▲이청준·한승원 문학길 등으로 구성돼 있고, 이 중에서도 ‘천관문학관’은 장흥 문학기행의 베이스캠프로서 국내 유일의 ‘문학관광특구’인 장흥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천관산 기슭에 자리 잡은 천관문학관에선 장흥 출신 문인들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는데, 진목마을과 신상마을에서 태어난 동갑내기 이청준과 한승원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비교해놓은 전시가 눈에 띈다. 특히 <서편제>, <아제아제바라아제>처럼 두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하는 코너도 흥미롭다. 각자의 일정에 맞는 코스를 선택해 장흥 문인들의 그윽한 묵향을 따라 나만의 습작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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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다지 해변의 ‘한승원 문학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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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 기슭의 ‘천관문학관’.
겁나게 맛있당게요~ ‘장흥삼합’
문화관광의 화룡점정은 역시 먹거리. 장흥의 맛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 ‘정남진 토요시장’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필수 코스. 장흥군을 대표하는 캐릭터 표고버섯(이름: 표동이)은 장흥이 깨끗한 물과 공기 좋은 숲을 간직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토요시장에선 향긋한 표고버섯을 비롯해 할머니들이 직접 키운 신선한 채소들을 만날 수 있고, 쟁반 가득 담긴 키조개, 매생이 등이 군침을 돌게 한다. 특히 사람보다 소가 더 많다는 장흥에서 질 좋은 한우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정기 5일장은 2일과 7일에 열리고 상설시장과 한우 판매장, 음식점 등은 매일 영업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이면 다양한 공연도 열려 방문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던 토요시장의 명물은 단연코 장흥의 대표 먹거리 ‘장흥(한우)삼합’이다. 부드러운 한우와 득량만 청정해역에서 자란 키조개, 맑은 숲에서 키운 표고버섯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뽐낸다. 1층 판매장에서 원하는 한우 부위를 구매한 뒤 유유히 흐르는 탐진강이 내려다뵈는 식당으로 올라가 상차림 비용만 지불하고 구워 먹는 꿀맛은 특급호텔 스테이크 부럽지 않다.

전통시장에서 자주 겪는 애로사항 중 하나가 주차 문제이지만, 정남진 토요시장에선 걱정 붙들어 매도 좋다. 바로 아래 탐진강변에 넓은 무료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문화유적지가 산재한 주변 둘레길을 걷거나 토요시장 맞은편 둔치공원 등을 쉬엄쉬엄 둘러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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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 토요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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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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