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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의 기부행위와
이사의 책임
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6다260455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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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의 개요
(1) 태백시는 2001. 12.경 리조트 사업을 하기 위하여 민간업체와 공동 출자하여 태백관광개발공사를 설립하였고, 태백관광개발공사는 ‘오투리조트’라는 이름으로 태백시에 대규모 골프장 등을 건설운영하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사업비 추가지출 등으로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었고, 태백관광개발공사의 지분 57.4%를 보유한 태백시는 강원랜드에 오투리조트의 운영자금을 대여 또는 기부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2) 태백시가 지명하여 선임된 강원랜드의 사외이사 J는 2012. 3.경 강원랜드의 제109차 이사회에 강원랜드가 태백시에 폐광지역 협력사업비로 150억 원을 기부하되 그 기부금의 용도를 태백관광개발공사의 긴급운영자금으로 지정하여 기탁하는 내용의 폐광지역 협력사업비 기부안을 발의하였다. 그러나 이사들 사이에 기부안의 타당성에 관하여 의견대립이 있었고, 가결할 경우 업무상 배임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결의가 보류되었다. 사외이사 J는 2012. 6. 27. 개최된 제110차 이사회에 다시 기부안을 발의하였으나, 태백시가 제출한 추가 자료에 대한 이사들의 검토시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결의가 다음 이사회로 보류되었다.
(3) 2012. 7. 12. 제111차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J가 다시 기부안을 발의하여 재심의가 이루어졌고, 재적이사 15명 중 12명이 출석한 가운데 출석이사 12명 중 찬성 7표, 반대 3표, 기권 2표로 결의가 이루어졌다. 강원랜드는 결의에 따라 태백시에 4차에 걸쳐 150억 원을 기부하였고, 태백시는 이를 태백관광개발공사에 전달하여 인력운용비 등 운영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4) 이후, 강원랜드는 2012년경 자사의 임원이었던 대표이사 피고 B 등 9명이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하여 또는 선관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여 기부를 승인하는 내용의 결의를 함으로써 150억 원 상당의 손해를 가하였으므로, 불법행위 손해배상으로 공동하여 원고에게 배상하여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하였다.
판결의 요지
(1) 상법 제399조 제1항은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에는 그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2항은 “전항의 행위가 이사회의 결의에 의한 것일 때에는 그 결의에 찬성한 이사도 전항의 책임이 있다.”, 같은 조 제3항은 “전항의 결의에 참가한 이사로서 이의를 한 기재가 의사록에 없는 자는 그 결의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상법 제399조 제2항은 같은 조 제1항이 규정한 이사의 임무 위반행위가 이사회 결의에 의한 것일 때 결의에 찬성한 이사에 대하여도 손해배상책임을 지우고 있고, 상법 제399조 제3항은 같은 조 제2항을 전제로 하면서,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자로서는 어떤 이사가 이사회 결의에 찬성하였는지를 알기 어려워 증명이 곤란한 경우가 있음을 고려하여 증명책임을 이사에게 전가하는 규정이다. 그렇다면 이사가 이사회에 출석하여 결의에 기권하였다고 의사록에 기재된 경우에 그 이사는 “이의를 한 기재가 의사록에 없는 자”라고 볼 수 없으므로, 상법 제399조 제3항에 따라 이사회 결의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고, 따라서 같은 조 제2항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2) 주식회사 이사들이 이사회에서 그 회사의 주주 중 1인에 대한 기부행위를 결의하면서 기부금의 성격, 기부행위가 그 회사의 설립목적과 공익에 미치는 영향, 그 회사 재정상황에 비추어 본 기부금 액수의 상당성, 그 회사와 기부상대방의 관계 등에 관해 합리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면, 이사들이 그 결의에 찬성한 행위는 이사의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에 위배되는 행위에 해당한다.
(3) 이 사건 결의는 폐광지역의 경제 진흥을 통한 지역 간 균형발전 및 주민의 생활 향상이라는 공익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고 그에 따른 기부의 액수가 원고 재무 상태에 비추어 과다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 사건 결의에 따른 기부행위가 폐광지역 전체의 공익 증진에 기여하는 정도와 원고에 주는 이익이 그다지 크지 않고, 기부의 대상 및 사용처에 비추어 공익 달성에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들이 원고 이사회에서 이 사건 결의를 할 당시 위와 같은 점들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피고들이 이 사건 결의에 찬성한 것은 이사의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에 위배되는 행위에 해당한다.
기부행위가 합리성을 결여한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으며 업무상 배임죄 등으로 형사처벌 될 수 있다.
시사점
다양한 법리와 쟁점을 포함하고 있는 사건이지만, 이하에서는 지방공공기관 임원들이 유의하여야 사항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사의 선관주의의무
상법상 주식회사의 이사는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게을리하여 회사에 손해를 야기한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며(제399조 제1항), 고의 또는 중과실로 자신의 임무를 게을리하여 제3자에게 손해를 야기한 경우에도 이를 배상할 책임을 부담한다(제401조). 이 선관주의의무는 작위의 업무 집행뿐만 아니라 부작위에 의한 업무 집행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이사의 감시의무, 출석의무 위반 등이 있다. 감시의무는 상근이사뿐만 아니라 비상근이사도 부담한다(대법원 2019. 11. 28. 선고 2017다244115 판결).
법령 또는 정관 위반과 달리 임무해태로 인한 선관주의의무는 회사의 업종, 규모 등과 같은 제반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고 있다. 특히, 경영 판단의 원칙이 적용된다(대법원 2006. 11. 9. 선고 2004다41651 판결 등). 합리적으로 이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조사·검토하는 절차를 거친 다음, 이를 근거로 회사의 최대 이익에 부합하도록 합리적인 경영상의 판단을 한 경우에는 사후에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면제한다는 것이다.
기부행위와 선관주의 의무
지방공공기관이 사업과 직접적 관련이 없더라도 시민단체 등에 기부하거나 문화행사를 후원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일반적으로, 기부행위는 지방공공기관의 목적 수행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행위라고 보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기부행위가 정당한 것은 아니다. 기부행위가 이사의 일방적 의사결정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이사의 사익추구를 위하여 변질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기부행위가 합리성을 결여한 경우, 이사는 임무위반 행위로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으며 업무상 배임죄 등으로 형사처벌 될 수 있다.
하지만, 실무에서 대부분의 기부행위가 공익적 측면도 있다는 점에서 어떠한 기부행위가 정당한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법원은 사익추구를 위하여 회사 자금을 기부의 형식으로 유용한 경우이거나 그 규모가 커서 회사를 도산에 이르게 할 정도인 경우에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하였다(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0도9871 판결 등). 대상판결은 민사판결이지만, 기부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 사건은 로펌 2군데로부터 기부 민·형사상 책임을 부담할 가능성이 있다는 자문결과를 받았음에도 결정을 내린 사안이다. 법원은 이를 고려하여 선관주의의무 위반을 보다 용이하게 인정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렇다면, 로펌 등으로부터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자문결과를 받으면 언제든지 면책된다고 볼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불확실한 상황하에서 받은 자문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진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야 하고, 조언을 받기 위해 필요한 회사의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여야 하며, 그 조언에 대하여 타당성 검토를 거치는 과정 등이 필요하다.
기권·반대한 이사의 손해배상책임
다수의 지방공공기관 이사회 결의는 출석이사의 만장일치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의사록에는 결정사항 요지만을 간략히 적는 경우가 흔하기에 이의를 기재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사들의 견해가 대립되는 경우에도 찬성과 반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해당 사건에서는 특이하게 2명의 이사가 기권하였다. 대상판결에서는 이사가 이사회에 출석하여 결의에 기권하였다고 의사록에 기재된 경우에는 이사회 결의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결의로 인하여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사회 결의로부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이사의 기권 방법이 이사의 감시의무를 위반한 것인지도 문제시될 수 있다. 대상판결의 환송 후 항소심에서는 이사의 임무위반행위가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 그 결의에 기권한 이사를 결의에 찬성한 이사와 동일하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다면 상법 제399조 제2항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감시의무를 해태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9. 10. 23. 선고 2019나2022225 판결). 그렇다면, 별도의 이유 없이 기권하는 경우 등에는 그 사정에 따라 감시의무 위반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 이사는 이사회에서 발언이나 답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여야 한다. 그리고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하는 이사회의 결의 등이 이루어지는 경우라도 반대의견을 표명한 이사라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감시의무 위반의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사회에 새로운 결의안을 발의하거나 독립된 관리·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는 감사 또는 상급기관 등에 보고하는 조치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상판결에서는 태백시에 기부를 주도한 J이사는 태백시가 지명한 사외이사다. 이와 같이 지명된 이사가 자신을 지명해준 주주와 재직 중인 회사 중 누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대상판결에서는 명확하게 후자의 관점에서 재직 중인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지방공공기관 당연직 이사 등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대상판결의 자세한 평석은 ① 백숙종, “주식회사 이사들이 이사회에서 회사의 기부행위를 결의한 경우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대법원 판례해설」 제119호, 법원도서관, 2019, ② 송옥렬, “2019년 회사법 판례의 분석”, 「상사판례연구」 제33권 제2호, 한국상사판례학회, 2020 등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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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진
지방공기업평가원
연구위원·법학박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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