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보기 E-Book
지난호보기 E-Book
바닷바람 맞으며
농익은 일몰에
詩 빚는 곳, 부안군
내소사
숲길 너머
거문고의 깊은 울림…
봄날 흩날리는 하얀 꽃잎처럼 사랑은 아름답고도 덧없는 것이었나?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의 3대 여류 문인으로 추앙받는 이매창의 본명은 이향금(李香今), 자는 천향(天香), 매창(梅窓)은 호이다. ‘매창’은 ‘매화가 핀 창’이라는 뜻이다. 전쟁(임진왜란)이 터지나 의병으로 참여해 소식이 끊긴 임을 사무치게 그리는 애틋함이 시에 담겨있다. 서른여덟에 절명해 생전에 아끼던 거문고와 함께 묻힌 매창은 부안군 문화예술의 수호신이 됐다. 채석강, 내소사 등 부안의 명소를 유람하며 시문(詩文), 예술을 논했던 당대 풍류객처럼 부안군으로 떠나보자.

편집실  사진 부안군
이미지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 이매창(1573~1610)의 한글시조, ‘이화우 흩날릴 제’ -
채석강 절벽처럼 겹겹이 쌓인 이야기들
이미지
홍길동 전설이 있는 ‘위도’
이미지
변산 격포리 ‘채석강’
국립공원공단은 변산반도국립공원을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국내 유일의 반도형 국립공원”이라고 소개한다. 5개 면을 아우르고 있는 국립공원 내에 직소폭포, 선계폭포, 낙조대, 채석강, 적벽강, 고사포 해변 등의 명소들이 즐비해 있어서인지 부안군 전체를 변산반도 또는 변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 만권의 책을 차곡차곡 포개놓은 듯한 ‘채석강’의 층암절벽처럼 논픽션과 픽션이 겹겹이 쌓여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도 전해진다.

조선 후기 사회의 혼돈을 풍자한 박지원의 <허생전> 에서 변산의 도적들이 남산골 괴인(怪人) 허생원에 대한 명성을 듣고 그를 두목으로 초빙한다. 우여곡절 끝에 두목이 된 허생원은 바다 건너 섬에 도착해 금은보화를 도적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며 정착시켰고, 변산에는 도적 떼가 없어졌다는 신통방통한 이야기다. 여러모로 부안과 인연이 깊은 허균이 홍길동전을 집필한 곳이 변산반도 선계계곡에 있던 정사암(靜思菴)이고, ‘율도국’의 실제 모델이 부안의 대표적인 섬이자 심청전인당수의 전설을 품고 있는 ‘위도’라는 것도 흥미롭다.
MZ의 핫스팟으로 부활… 영화 <변산>
“내 고향은 폐항,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며 영상테마파크와 전라좌수영 세트장이 있는 부안은 영화와 드라마 단골 촬영지이기도 하다. 영화 ‘왕의 남자’, ‘광해’, ‘관상’ 등을 비롯해 드라마로는 ‘불멸의 이순신’, ‘선덕여왕’, ‘킹덤 2’ 등에서 배경으로 등장했다. 사극에서 약방의 감초였던 변산반도가 청춘들을 위한 핫스팟으로 떠오르게 된 건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을 통해서다. ‘가난해서 보여줄 게 노을밖에 없다’는 청춘의 우울한 독백과 잿빛 미장센은 서서히 붉게 물드는 바다처럼 뜨거운 청춘의 유쾌함으로 변신한다. 변산 해변의 붉은 노을은 방황하고 고뇌하는 청춘들의 고백을 담담히 듣는다. 온몸을 감싸는 듯한 저녁놀은 아물지 않던 상처를 시나브로 치유한다. 마음속 에너지가 제로가 돼버린 지친 영혼들을 위한 치유의 축제 ‘부안 붉은노을축제’는 매년 가을 변산해수욕장 일원에서 열리는데, 재즈페스티벌, 레드와인 페스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다.
이미지 이미지
레테 강처럼 흐르는 내소사 숲길에서
부안군 남서부는 변산이 겹겹이 싸여 있고, 북동부는 넓고 비옥한 평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인 영향과 북서 계절풍의 영향으로 겨울에 눈이 유독 많이 내리고, 빼어난 설경을 자랑하는 명소도 많다. 겨울날 눈 쌓인 내소사(來蘇寺)의 고요한 전나무 숲길을 자박자박 걸어보라. 혼돈의 속세에서 벗어나 강호에 은둔한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 된 듯하다. 관음봉 아래 곰소만의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자리하고 있는 천년고찰 내소사는 부안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음식점과 각종 상점이 늘어선 입구와 안내소를 지나 일주문부터 천왕문까지 이어진 숲길에 접어들면 전혀 다른 공기 내음을 맡을 수 있다. 그에 더해 안개까지 자욱하다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망각의 강을 건너는 ‘행운의 체험’까지 즐길 수 있다. 전생의 모든 번뇌를 털어버리고 평온의 길을 걷다 보면 아름다운 대웅보전에 도달한다. 대웅보전의 꽃무늬 문살은 우리나라 장식무늬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고, 불단 후불벽면에 가득 그려진 ‘백의관음보살좌상’은 국내에서 매우 희귀한 벽화다. 백의관음보살좌상의 눈을 보고 걸으면 눈이 따라오는데 그 눈을 바라보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성취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미지
내소사 대웅전 꽃무늬 문살
이미지
내소사 설경
람사르 습지 '줄포만갯벌'과 '노을빛 정원'
진흙 속 진주처럼 갯벌은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조선시대 최고의 어살 어업지로 각광 받으며 1960년대 황금어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부안의 줄포만갯벌도 국내에서 다양한 연구를 통해 그 생태적 가치가 널리 알려졌다. 반복적인 침수를 해결하기 위해 제방을 쌓게 되면서 줄포만갯벌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2006년 12월 정부가 습지보전법에 의해 연안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고, 2010년 2월에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로 인정받아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새로 쌓은 제방 안쪽 버려졌던 곳에 갈대가 무성해지며 담수습지가 형성됐는데, 이곳을 공원화해 더 많은 이들에게 습지의 중요성과 갯벌 보존을 알리고 있다. 해의길 유원지, 자연생태정원, 갯벌습지 일원 등이 있는 ‘노을빛 정원(줄포만갯벌생태공원)’은 갈대숲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가 장관을 연출해 사진가들의 촬영 명소로도 인기가 많다. 또 생태보트체험, 자전거타기, 파크골프장, 낚시체험, 물고기 먹이주기체험 등도 진행되고 있다.
이미지
노을빛정원과 줄포만갯벌
갯벌의 소곤거림에 바다와 동행하는 마실길
변산반도의 다채로운 절경을 즐기며 해안을 걸을 수 있는 부안 마실길은 트래킹을 즐기는 이들이 수시로 찾는 탐방로다. 새만금홍보관에서부터 시작해 변산해수욕장, 고사포해수욕장, 적벽강, 채석강, 솔섬, 곰소항, 줄포만갯벌 등 총 8개의 코스가 변산반도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내륙의 숲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수천만 년 동안 비바람, 파도와 부대끼면서 형성된 기암괴석, 찔레꽃, 유채꽃 등 철마다 달리 피는 들꽃들로 독특한 풍경을 자랑하는 마실길은 걷는 이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산과 들, 바다가 어우러져 보고 듣고 먹고 체험할 수 있는 등 부안 마실길만의 독특한 매력 때문에 해마다 각종 동호회, 산악회 회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종전의 변산마실길이 내륙으로도 연결돼 해안선과 나지막한 뒷산과 마을로도 넘나들 수 있는 부안 마실길은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코스별로 1시간 반에서 길게는 2시간 반까지 걸리는 8개 코스 중에서도 고사포해수욕장에서 출발해 격포항(해넘이공원 광장)까지 이어지는 8㎞가량의 구간이 하이라이트로 뽑힌다. 코스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지만, 이 구간은 하섬과 적벽강, 채석강 등이 있어서 변산반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최상의 코스로 평가받는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무념무상 걷고 싶다면 힐링의 부안 마실길을 찾길 바란다.
이미지
변산해수욕장
이미지
부안 마실길
끝까지 친일을 거부한 시인…
‘석정문학관’
이미지 이미지
조선시대 부안군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이매창이 있었다면, 현대 시문학의 거장으로는 신석정이 있다. 문학 애호가라면 부안에 왔을 때 매창이 잠들어 있는 ‘매창테마관’과 ‘석정문학관’을 들를 것을 권한다. 1907년 부안읍 동중리에서 태어난 신석정은 한국 시단에서 독특한 서정 세계를 구축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에게 언제나 ‘전원시인’이나 ‘목가시인’이란 호칭이 따를 만큼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이면서도 시 세계가 지닌 서정적 깊이와 치열한 역사의식, 현실 참여의 정신이 살아 있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1939년 첫 번째 시집 ‘촛불’ 발표할 무렵, 지식인 대부분이 친일 부역자로 변절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해방까지 붓을 꺾었다. 30년대 창씨개명은 물론 친일 시를 남기지 않은 시인은 신석정이 유일하다고 한다.

전시실 입구에는 시인의 좌우명 ‘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 라는 글귀가 있다. ‘뜻이 높은 산과 흐르는 물(자연)에 있다’는 뜻이다. 신석정은 ‘한가롭고 고요해 말이 적고, 영화와 이익을 사모하지 않는다’는 도연명의 경지를 그리면서 속된 것을 멀리했다. 변함없는 지조를 지니고 살고자 했던 시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문학관에는 5권의 대표시집, 유고시집, 친필 원고 등 5,000여 점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 부안군 문화관광 정보: www.buan.go.kr/tour
youtube

(우) 06647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30길 12-6 (지번) 서초동 1552-13

Copyright(c) Evaluation Institute of Regional Public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