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4 2026 Summer
포커스 2

한정된 인력, 커지는 책임

현장 중심 안전관리의 현실 과제

지방공공기관의 안전관리는 이제 단순한 법적 의무를 넘어 기관 경영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인력과 예산의 한계, 시설 노후화, 외주 확대 등 복합적인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강화되는 안전관리 요구 속에서 지방공공기관이 지속가능한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결국 안전관리의 핵심은 제도와 문서를 넘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 실행력을 확보하는 데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조직적 기반 마련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안전이 경영 의제로 확대되다

최근 지방공공기관의 안전보건관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과거의 안전관리가 사고 발생 후 대응하거나 법정 의무사항을 이행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기관 경영 전반에 내재화되어야 하는 핵심 책무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지방공공기관 안전보건관리 가이드라인」 개정(’26.1.12)으로 안전보건 투자계획 반영, 기관별 투자 실적 점검, 도급·용역·위탁 업무의 안전관리 책임 강화 등이 강조되면서 안전은 더 이상 현장 부서만의 과제가 아니라, 기관 전체가 함께 부담해야 하는 경영 의제가 되었다.

그러나 지방공공기관의 현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방공공기관은 주민 생활과 밀접한 공공시설, 체육·문화시설, 주차장, 교통시설, 환경기초시설, 공원, 관광시설 등 다양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관리 대상은 넓고, 시설은 노후화되고 있으며, 이용자의 안전 요구 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반면, 지자체의 통제하에 예산, 인력, 사업 승인의 한계로 인해 대부분의 기관은 제한된 정원과 예산 속에서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안전관리 전담인력은 충분하지 않고, 현장 근로자의 고령화와 숙련 인력 부족, 외주·위탁 업무 확대까지 겹치면서 안전관리의 체감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다.

복합성을 더하는 지방공공기관 안전관리

특히 지방공공기관의 현장 안전관리는 일반적인 산업현장과 다른 복합성을 가진다. 하나의 기관 안에서도 체육시설, 공연장, 캠핑장, 주차장, 하수처리장, 소각시설, 도로·교통시설 등 위험 특성이 전혀 다른 공간이 함께 존재한다. 어떤 현장은 시민 이용자의 안전이 중심이고, 어떤 현장은 작업자 산업안전이 핵심이며, 또 다른 현장은 재난·환경·시설물 안전이 동시에 얽혀 있다.

결국 지방공공기관의 안전관리자는 단일 분야 전문가라기보다 시설, 재난, 산업안전, 보건, 민원, 계약관리까지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유니버설 조인트(universal joint)와 같은 ‘현장 조정자’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커지는 책임, 늘어나는 현장 부담

문제는 책임은 커졌지만 이를 뒷받침할 현장 기반은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관장과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강조되면서 안전관리 체계의 문서화, 위험성평가, 교육·훈련, 수급업체 관리, 사고조사, 개선조치 이행 등 관리 항목은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한정된 인력이 여러 시설을 순회 점검하고, 각종 법정 업무와 평가자료 작성, 민원 대응, 긴급 보수 업무를 병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강화된 교육·훈련 참여 요구,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운영에 따른 절차 이행과 기록관리, 위험성평가 및 개선조치 관리 등 행정적 부담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특히 안전관리자는 현장의 위험요인을 직접 확인하고 개선해야 하는 동시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여부를 증명하기 위한 문서화, 회의 운영, 실적 관리, 외부 평가 대응까지 수행해야 한다.

그 결과 안전관리 업무는 현장 실행과 행정 관리 사이에서 계속 확장되고 있으며, 안전관리자가 현장에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행정업무도 수행해야 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 중심 안전관리를 위한 네 가지 대응 전략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히 “안전을 더 열심히 하자”는 선언이 아니다. 제한된 인력 구조 속에서도 작동 가능한 현장 중심 안전관리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방공공기관이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네 가지 대응 전략을 제언코자 한다.

위험도 기반 관리체계 구축

첫째, 모든 위험을 동일하게 관리하기보다 시설별·작업별 위험도를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재설계해야 한다. 노후시설, 고위험 작업, 시민 밀집 공간, 외주 작업, 야간·휴일 운영 시설 등 사고 발생 가능성과 피해 규모가 큰 영역을 선별하고, 이에 안전관리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위험성평가 역시 서류 작성 중심에서 벗어나 실제 작업 변화, 계절적 위험, 반복 민원, 아차사고, 설비 고장 이력 등을 반영하는 동적 관리 방식으로 고도화될 필요가 있다.

조직 전체가 참여하는 안전 거버넌스

둘째, 현장 실무와 조직 운영을 연결하는 안전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안전 전담부서가 모든 위험을 직접 관리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각 부서의 관리감독자, 시설 담당자, 계약 담당자, 수급업체, 현장 근로자가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이해하고, 위험 정보를 공유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설별 안전담당자 지정, 부서별 안전 KPI 설정, 위험요인 개선 이행률 관리, 안전회의 결과의 경영진 보고, 사고·아차사고 사례 공유 등이 체계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안전관리 부서는 ‘혼자 처리하는 부서’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안전 실행력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한다.

외주·위탁 업무 안전관리 강화

셋째, 외주·위탁 업무에 대한 안전관리 방식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지방공공기관 현장에서는 청소, 경비, 시설보수, 전기·기계·소방시설 유지관리, 조경, 폐기물 처리 등 다양한 업무가 외부 인력에 의해 수행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발주기관의 책임과 수급업체의 책임이 분절되면 안전 사각지대가 발생하기 쉽다. 따라서 계약 단계부터 안전보건 역량을 확인하고, 작업 전 위험성 검토, 합동점검, 작업허가, 보호구 착용, 비상연락체계, 사고 발생 시 보고 절차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 적격 수급인 선정은 단순한 서류 확인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업체를 선택하고 관리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스마트 안전관리와 디지털 기반 대응

넷째, 스마트 안전관리와 디지털 기반 대응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제한된 인력으로 넓은 시설을 관리해야 하는 지방공공기관의 특성상 디지털 기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 보조도구가 되고 있다. CCTV 지능형 분석, IoT 센서, 모바일 안전점검 앱, QR 기반 시설점검 이력관리, 밀폐공간 가스농도 모니터링, 고령 근로자 위치·상태 확인 장치, AI 기반 위험 알림 시스템 등은 현장 안전관리의 눈과 귀를 확장할 수 있다. 다만 기술 도입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수집된 데이터가 실제 점검, 보수, 교육, 예산 편성, 경영진 의사결정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지원사업을 활용한 안전관리 혁신

스마트 안전관리와 디지털 기반 대응체계 구축은 장비 도입, 시스템 개발, 데이터 연계, 유지관리 인력 확보 등 일정 수준의 예산 투입과 기술력 확보를 전제로 한다. 재정 여건이 넉넉하지 않은 지방공공기관 입장에서는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자체 예산만으로 고도화된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행정안전부의 「지역맞춤형 재난안전문제 해결 기술개발 지원사업」과 같은 정부지원사업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업은 지역이 직면한 특수한 재난안전 문제를 기술개발과 현장 실증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방공공기관의 안전관리 혁신을 위한 중요한 재원 확보 수단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천시설공단은 부평지하상가를 대상으로 “디지털트윈 활용 대형지하상가 재난감시·대응·훈련 통합시스템 개발” 사업(주관기관: 주식회사 덕산, 사업기간: ’25.4.1~’27.12.31, 참여 지자체: 인천광역시)에 참여하고 있다. 부평지하상가는 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상가 중 하나로, 복잡한 공간 구조와 높은 유동인구, 다수 점포가 밀집한 특성상 화재·침수·정전 등 복합재난 대응체계 구축의 필요성이 큰 시설이다. 이에 디지털트윈 기반의 공간정보와 재난감시 데이터를 연계하여 재난 발생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대응 의사결정과 훈련 시나리오까지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사례는 지방공공기관이 제한된 자체 예산의 한계와 전문적 기술개발의 한계를 넘어 정부지원사업, 지자체 협력, 민간 기술기업의 전문성을 결합하여 현장 중심 안전관리 체계를 고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공공시설의 구조적 위험성과 운영 특성을 반영하여 재난감시, 대응, 훈련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지방공공기관은 스마트 안전관리 사업을 추진할 때 자체 예산 확보와 함께 중앙정부 공모사업, 지자체 협력사업, 연구개발 실증사업 등을 적극 발굴하여 안전투자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안전은 비용이 아닌 경영 인프라다

지속가능한 안전관리 체계를 위해서는 안전투자를 비용이 아닌 기반 인프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노후 시설·장비 교체, 안전보건 전문인력 확보, 스마트 안전장비 도입, 안전교육·훈련, 보호구 및 작업환경 개선, 수급업체 안전관리 지원 등은 단기적으로는 비용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고 발생 시 인명피해, 시설 운영 중단, 법적 책임, 기관 신뢰도 하락까지 고려하면 안전투자는 가장 기본적인 경영 안정화 전략이다. 특히 지방공공기관은 주민 생활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안전관리 실패는 곧 공공서비스 신뢰의 손상으로 이어진다.

결국 지방공공기관 안전관리의 핵심은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하라”는 방식이 아니라, 제한된 인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기관은 위험 우선순위 기반 관리, 부서 간 역할 분담, 수급업체와의 협력체계, 디지털 기술 활용, 경영진의 지속적 관심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해야 한다. 또한 안전관리자는 현장에 홀로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안전감각을 깨우는 촉진자이자 현장과 경영을 연결하는 안전관리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 지방공공기관의 안전보건관리는 문서상 체계 구축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 실행력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인력은 줄고 책임은 커지는 현실 속에서도 안전관리의 답은 현장에 있다. 다만 그 현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장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지자체와 경영진의 투자 결정, 조직의 역할 분담, 부서 간 협업, 수급업체 관리, 디지털 기반 스마트 기술지원, 정부지원사업의 적극 활용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현장 중심 안전관리는 지속가능한 체계가 될 수 있다.

결국 지방공공기관의 안전관리 수준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응 능력만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상적으로 위험을 발견하고 개선하는 조직의 역량에서 드러난다. 안전이 특정 부서의 업무나 평가 대응 자료에 머무르지 않고, 예산 편성, 시설 운영, 계약 관리, 교육·훈련, 현장 점검 전반에 스며들 때 지방공공기관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철

인천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소방방재연구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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