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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선거로
전환하는 글로벌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있다. 최근 우스갯소리로 ‘나 때는 말이야, 마스크도 안 쓰고 클럽에 갔었는데 말이야’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지금과 완전히 다를 것이라 말한 바 있다. 분명 우리는 지금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중 선거 방식의 변화는 가장 발 빠르게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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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있었던 지난 4월 15일.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로나19의 전장 한 가운데서 총선을 치룬 나라가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4.15 총선을 일정대로 진행한다고 밝혔고, 많은 걱정과 우려 속에서 총선이 치러졌다.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로 총선으로 인한 확진자는 0명을 기록했고, 전 세계인들은 한국인들의 저력에 다시 한 번 놀라움을 나타냈다.
한편 일각에서는 원격 의료, 원격 수업, 원격 근무는 가능한데 왜 원격 투표는 어려운가라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비대면 온라인 투표방식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민간 기업 가운데 비대면 방식의 전자투표를 활용한 사례가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그 대표적인 예로, 정기주주총회에서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를 활용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공직 선거 영역에서 비대면 온라인 투표방식은 여러 가지 면에서 걸림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해커들이 투표에 개입하거나 결과를 조작할 가능성, 전자투표가 개인 사생활 정보를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점과 투표 결과를 조작할 수 있고, 미집계 등의 문제점들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보안의 불안정과 예상하지 못한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섣불리 시도를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향후 기존의 면대면 방식은 커다란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쇼크 한가운데서 오히려 꽃을 활짝 피운 ‘언택트(Untact)’트렌드가 보편화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언택트(Untact)’는 ‘접촉’을 뜻하는 영단어 ‘콘택트(Contact)’에 부정의 의미인 접두어 ‘언(Un)’을 합성한 말로, 우리말로는 ‘비대면’ 또는 ‘비접촉’으로 풀이 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더해지면서 면대면보다 더 효율적이고 친밀한 접촉이 가능해짐으로써 공직 선거 영역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언택트 트렌드를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해외에서는 블록체인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투표를 진행하는 국가들이 있다. 대표적인 국가로 에스토니아와 스페인을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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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블록체인 전자투표 시행 ‘에스토니아ʼ
조금 생소한 이름의 에스토니아는 유럽 발트해에 있는 공화국으로 정식 명칭은 에스토니아공화국(Republic of Estonia)이다. 러시아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와 함께 발트 3국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전체 인구는 약 130만 명으로 우리나라 수원시 규모의 작은 국가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 뭐가 있겠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오히려 국가 규모가 작아 IT 혁신을 실행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에스토니아는 디지털 개발지수 세계 1위(바클레이즈), 인터넷 자유지수 세계 1위(프리덤하우스), 창업활동지수 유럽 1위(세계경제포럼), 세제 경쟁력 OECD 1위(미국조세협회), 디지털경제·사회지수 유럽 1위(EU집행위원회) 등 높은 국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국가 자체를 디지털화 하지 않으면 살길이 없다는 생각으로 국가 시스템을 디지털 기반으로 구축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세계적인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는 5개 국가인 한국, 뉴질랜드, 이스라엘, 영국과 함께 ‘#디지털5(Digital 5)’의 일원으로 그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디지털화 부분에 있어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자투표다. 지난 2005년 에스토니아는 세계 최초로 지방선거에 전자투표를 도입했다. 2011년, 휴대전화를 이용한 전자투표를 도입했고 2015년 국회의원 선거엔 투표의 30.5%가 전자투표로 진행됐다.
국민에게 블록체인 기반의 ID를 발급해 투표권 외에도 교육, 재무 등 다양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권자의 등록 여부를 확인하는 블록체인과 투표 내용이 포함된 블록체인, 두 개의 별도 블록체인을 사용하여 유권자의 익명성을 보장하고 있다.
전자투표와 함께 전자영주권(e-residency) 제도도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는 지난 2014년 12월 에스토니아에서 세계 최초로 도입한 가상 영주권으로, 가상영토에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전자거주증은 일종의 전자주민등록증(디지털 ID 카드)로, 외국인도 등록하면 온라인 금융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전자영주권은 현재 160개국에서 약 5만 명이 취득했고, 한국에서도 2017년 1호 전자영주권 수령센터를 서울 남대문에 개소해 온라인으로 신청이 가능하다.
해외 거주자들이 전자영주권을 받으면 디지털 ID 카드로 세계 어디서든 유로존 소속의 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다. 한국을 떠나지 않고도 유럽연합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에스토니아 시민들은 일종의 인터넷 여권이라 할 수 있는 디지털 전자신분증을 이용해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제공받는다. 금융거래의 99%, 세금신고의 95%가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방한한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기자 간담회에서, 이러한 디지털 전자신분증 도입으로 관공서에서 줄을 서는 일이 없어졌고 관공서로 차를 몰고 갈 일이 없어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었으며, 종이를 사용할 필요도 없어 숲을 보호할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한 에스토니아는 전자서명 등 디지털 혁신 제도를 통해 비용 절감 효과를 거뒀으며, 다양한 정부 업무를 관리하는 국가정보 교환 플랫폼 엑스로드(X-raod)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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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투표 시스템 ‘아고라 보팅(Agora Voting)’ 도입한 ‘스페인’
에스토니아처럼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를 도입해 시민 참여를 확대한 국가가 또 있다. 바로 스페인이다.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페인은 이미 지난 2015년 블록체인 투표 시스템을 도입, 사용자가 웹을 통해 편리하게 유권자 등록 및 투표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한 바 있다. 바로 스페인의 신생 정당인 ‘포데모스’가 그 시작이다. 2014년 창당한 신생정당 포데모스는 시민ㆍ정당 민주주의를 앞세워 스페인 정치권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주목할 만한 점은 포데모스가 선택한 투표 방식이다.
포데모스는 정당 내 의사결정 시스템에 ‘아고라 보팅(Agora Voting)’이라는 블록체인 투표 시스템을 도입, 시민 참여 활동을 장려하여 집행부를 선출했다.
16세 이상 국민이라면 당원 가입 여부에 상관없이 신분증 사본을 제출하고 유권자로 등록할 수 있다. 최초 등록 이후부터는 간편한 로그인ㆍSMS 인증 절차만으로 투표창 접근이 가능하다. 이러한 투표 방식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블록체인 기술로 구현한 보안성과 탈 중앙화된 시스템이 신뢰를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당원 투표 내용은 암호ㆍ익명화 과정을 거쳐 서버에 저장되고, 투표자 개개인에게는 자신의 표를 추적할 수 있는 무작위의 코드가 부여된다. 이 코드를 입력하면 투표자는 자신이 참여한 투표가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고, 참여자는 몇 명인지, 내가 던진 표는 현재까지 해당 선택지에 몇 퍼센트나 기여하고 있는지 등의 통계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투ㆍ개표 전 과정이 유권자에게 투명하게 공유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는 웹을 통해 편리하게 유권자 등록 및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 포데모스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집행부 26명을 선출했으며, 당내 의사결정 및 의견 제시도 블록체인을 이용한 투표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와 스페인 외에도 호주의 플럭스(Flux)라는 이름의 정당과 북유럽의 덴마크도 블록체인 정치가 급속도로 퍼지는 중이다. 미국 유타주 공화당에서도 지난 2016년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로 공화당 대선 후보를 선정한 바 있다. 9억 명의 유권자를 보유한 인도는 현재 주소지가 아닌 곳에서도 유권자가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반의 투표기 개발에 힘쓰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직접민주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코로나19로 촉발된 언택트 트렌드로 그 속도는 더욱 가속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보안과 신뢰성 문제가 완벽히 해결된다면 블록체인을 통한 비대면 선거는 미래의 직접민주주의에 있어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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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현
월간 CEO&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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