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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낙관성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을 구분해 주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바로 낙관성에 대한 태도다. 이런 점에서 현재 내가 생활하는 모습을 점검해 보는 차원에서 아래의 두 가지 질문에 먼저 답해보기 바란다.
당신은 낙관성이 지나칠 경우, 독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까? 
예   아니오
당신은 지혜가 지나칠 경우, 독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까? 
예   아니오
질문 중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를 선택한다. 대조적으로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오’를 선택한다. 이처럼 일반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지혜와 낙관성은 서로 다른 것이며 특히 지혜롭지 않은 형태의 낙관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지혜롭지 않은 낙관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때때로 낙관성을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시켜버리기도 한다. 아마도 낙관성에 관한 심각한 비아냥거림 중 하나는 “낙관성이 가장 만개한 곳은 바로 정신병원이다”라는 말일 것이다.
낙관성이 지나치면 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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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견상 낙관성이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식적인 시각은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마치 돈키호테처럼 지혜가 부족해서 곤란에 처한 사람에 대해서 낙관성이 문제였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다지 지혜롭지 못한 일이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는 한 탁월한 수준의 낙관성을 갖출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낙관적인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지나치면 독이 되는데 누가 충분히 낙관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겠는가?
낙천성(樂天性)과 낙관성(樂觀性)은 다르다. 낙천성과 낙관성 모두 세상을 즐겁고 좋은 쪽으로 바라보는 특성을 뜻한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낙천성은 타고나는 기질에 해당되는 반면, 낙관성은 학습된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낙관성을 ‘학습된 낙관주의(learned optimism)’라고 부른다. 둘째, 낙천성은 지혜와 무관한 반면, 낙관성은 반드시 지혜를 동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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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성의 심리학적 정의는 ‘좋은 일은 최대로’ 그리고 ‘안 좋은 일은 최소로’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생각을 조직화하는 동시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상 낙관적이기만 하면, 삶에서 좋은 일은 더 많이 일어나는 동시에 나쁜 일은 더 적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이러한 결과를 낳는 방법인가 하는 점이다.
낙관성의 핵심 포인트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가능한 선택지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 때 좋은 일은 더 많이 일어나고 나쁜 일은 더 적게 일어나게 될 것인지를 판단내리는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떠올려 보라!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하다가 원래 하차해야 하는 역을 지나쳐 약속 시간에 늦게 되었다.’
보통 이러한 문제 상황에서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짜증나. 나는 맨날 이 모양이야!” 같은 식의 반응이다. 낙관적인 사람도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낙관적인 사람은 이러한 반응을 한 다음에 조금 더 낙관적인 해석을 덧붙인다는 차이가 있다. 예컨대, “방심하다 보니 실수했네. 다음에는 조금 더 신경 써야지!” 같은 생각을 덧붙이는 것이다.
낙관적인 사람의 사고와 실천방식
낙관성의 예를 들기 위해 한국인이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을 만한 인물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바로 송해다. 그는 낙관성과 관련해서 교과서에 해당될 만한 인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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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는 9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전국노래자랑’의 MC를 맡고 있고 65년 간 부인과도 금슬(琴瑟)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만약 누군가가 송해의 이러한 삶을 부러워하면서 “선생님은 참 운이 좋으신 분 같아요”라고 말한다면, 송해는 펄쩍 뛸 것이다. 왜냐하면 송해는 6·25 때 부모님 및 가족과 생이별을 했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외아들을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먼저 떠나보내는 불운을 겪었기 때문이다.
송해는 대학생이었던 외아들이 불의의 사고를 겪을 것을 염려해서 오토바이를 절대 못 타게 말렸을 뿐만 아니라, 아내가 자신 몰래 사줬던 오토바이를 직접 부셔버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송해의 아들은 남편 몰래 아내가 사준 두 번째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빗길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보통 비관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을 겪으면 비극이 더 깊어지는 방향의 선택, 즉 이혼을 결심하는 경향이 있다.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두고서 가정불화를 겪다가 결국 이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송해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었을지라도, 이미 일어난 비극이 또 다른 비극을 낳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송해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부부 간에 좋은 금슬을 유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외아들을 떠나보낸 후 송해가 아내에게 화를 전혀 안 냈던 것은 아니다. 송해는 또한 외아들을 떠나보낸 직후에 아내를 원망하면서 역정을 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북에 두고 온 어머니가 자식인 자신을 잃었을 때의 심정과 외아들을 잃은 아내의 심정이 상통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송해는 아내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고마움을 바탕으로 세상의 풍파를 함께 헤쳐 나가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송해는 90세 기념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결혼식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이 자리에서 송해는 아내에게 “평생을 갚아도 모자를 만큼 빚을 지고 살아 왔소”라는 사랑 고백을 하였다. 이것이 낙관적인 사람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방식이다.
비극 속에서도 최선을 삶을 살아내는 힘
때로는 암흑의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낙관적인 사람도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군투사이자 혁명가로서 불꽃처럼 살다간 김산(金山)이 남긴 말은 시대의 비극 속에서 개인에게 허락된 최선의 삶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나의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의 승리만큼은 간직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승리다.” 슬기로운 낙관성이란 이처럼 멋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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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건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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