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형 행정 공공서비스도
지방공공기관의 새로운 전환과
매달 자동 결제되는 OTT 서비스처럼 주민이 별도 신청을 하지 않아도, 필요한 행정 서비스가 제때 도착하는 구조를 떠올려 보자. 복지 위기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가구에 먼저 연락이 가고, 산사태 위험 지역 주민에게는 사전에 안내 메시지가 발송되며, 각종 수당·감면·지원제도가 대상자에게 자동 안내·연계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행정 운영 방식을 ‘구독형 행정(Subscription-based Government)’이라 부를 수 있다. 구독형 행정은 공공서비스를 한 번의 신청·처리로 끝내지 않고, 주민과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필요한 조치를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구조다. 지방공공기관 입장에서는 재난·복지·환경·시설관리 업무를 보다 선제적·예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운영 모델이기도 하다.
글. 편집실
구독형 행정
구독형 행정이란 무엇인가
구독형 행정은 민간에서 익숙한 구독 서비스 개념이 행정으로 옮겨온 형태다. 주민이 한 번 동의·등록을 하면 그 이후에는 행정기관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상 여부를 정기적으로 판단하고, 필요 시 서비스를 자동으로 제안·제공하는 방식이다.
핵심 특징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서비스가 일회성 처리로 끝나지 않고, 정해진 기준과 주기에 따라 반복·갱신된다는 점이다. 또한 행정기관이 주민의 생활·시설·환경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관찰·분석하면서 위험이나 필요를 먼저 감지하는 구조를 갖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수집된 정보를 행정 내부에서 재사용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유럽연합이 추진하는 ‘원스 온리(once-only) 원칙’은 이런 구독형 행정의 방향과 맞닿아 있다. 시민과 기업이 동일한 정보를 공공기관에 한 번만 제출하면, 그다음부터는 행정기관들이 내부적으로 정보를 연계·활용해 세금·사회보장·허가·등록 같은 서비스를 반복적으로
제공한다.
결국 구독형 행정은 ‘신청이 있어야 움직이는 행정’에서 ‘상황 변화를 감지하면 먼저 움직이는 행정’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주민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절차가 줄고, 놓치기 쉬운 권리·지원제도를 제때 안내받는 구조가 된다. 행정기관 입장에서는 인력과 예산을 긴급 처리보다 선제
대응에 배분할 수 있고, 복잡한 정책 목표를 데이터 기반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왜 지금, 구독형 행정인가
구독형 행정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사회·기술·예산·정책 측면의 변화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민의 서비스 경험이 달라졌다. 이제 많은 국민은 정기 결제, 자동 추천, 맞춤 알림에 익숙하다. 배송·금융·건강관리·콘텐츠 소비 등 일상 대부분에서 ‘내 상황을 알고 먼저
알려주는 서비스’를 기대한다. 이러한 경험은 공공서비스에 대한 눈높이도 함께 끌어올리고 있다.
데이터 기반 행정 환경도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 복지·세무·건강·기상·교통·수자원·환경·에너지 등 여러 분야의 데이터가 디지털 형태로 축적·연계되는 중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은 이 데이터를 결합해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재난 위험을 예측하며, 정책 대상을
세밀하게 분류하는 시도를 확대하고 있다. 과거에는 손에 쥔 자료가 부족해 ‘신청 위주 행정’이 불가피했다면, 이제는 데이터가 선제 대응을 뒷받침해 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IT 예산 구조 변화도 중요한 요소다. 과거에는 각 기관이 수십억 원을 들여 전용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보수 비용을 장기간 부담해야 했다. 최근에는 필요한 기능을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로 구독해 사용하는 방식이 확산되면서 초기 구축비 없이도 최신 솔루션을 도입할
수 있게 되었다. 경북 청송군이 문서열람 시스템을 SaaS 방식의 문서뷰어로 전환해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 군민의 문서 접근성을 향상시킨 사례는 소규모 지자체의 디지털 전환 방향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기후위기, 감염병, 고립·고독사, 에너지 위기 등 재난·돌봄·환경 분야의 이슈가 겹치며 행정의 선제 대응 요구가 크게 높아졌다. 문제 발생 후 대응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상시 모니터링과 자동 알림에 기반한 구독형 행정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떻게 작동하는가: 데이터와 AI가 만드는 자동 행정
구독형 행정의 작동 원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먼저 행정기관이 정책별로 ‘관심 대상 집단’을 설정한다. 복지 위기가구, 산사태 위험 지역, 노후 시설물, 고령 1인가구, 영유아 가구, 청년 구직자 등이다. 이어서 이들을 식별하고 변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수집·정제·분석하는 체계를 마련한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분석 기법이 핵심 역할을 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이 운영하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은 단전·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장기 입원, 실업 등 여러 위기정보를 결합해 위기가구를 찾아내고, 지자체에 조사·지원 정보를
정기적으로 전달한다. 최근에는 AI를 활용한 초기 전화상담까지 도입해 전국 시·군·구에서 위기가구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상담·방문·연계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와 여러 자치구도 복지 사각지대 발굴 정기조사를 운영하며,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사회복지 공무원의 현장 조사와 연계하고 있다. 이처럼 구독형 행정에서는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라 개입 시점과 내용을 표준화해 두고, 시스템이 정해진 주기마다 이를 자동으로 실행한다.
정리하면, 구독형 행정은 데이터 분석 → 대상자 선별 → 담당자 배정 → 안내·상담·지원의 흐름을 하나의 서비스 체계로 묶어 주민이 별도 신청을 하지 않아도 삶의 변화에 맞춘 행정서비스가 반복해서 제공되도록 만드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구독형 행정과 국내외 확산 사례
구독형 행정이라는 용어는 아직 법제나 제도로 굳어지지 않았지만, 그에 가까운 시도는 국내외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표 1>과 같다.
표 1. 국내 구독형 행정·SaaS 기반 서비스 도입 사례(요약)
| 기관·지역 | 적용 분야 | 주요 내용 | 행정·주민 측 효과 |
|---|---|---|---|
|
보건복지부· 한국사회보장정보원 |
복지 사각지대 발굴 및 위기가구 지원 |
위기정보를 결합해 복지 위기가구를 선제 발굴하고, 지자체에 조사·지원 요청을 정기적으로 전달 | 사후 민원 중심 복지에서 선제적 발굴·지원 체계로 전환, 복지 사각지대 감소 |
|
보건복지부 (전국 시·군·구) |
AI 기반 복지 초기상담 | AI 상담 시스템으로 초기 상담을 자동화하고, 심층 상담이 필요한 대상은 담당 공무원과 연계 | 상담 대기시간 단축, 담당자 업무 부담 완화, 위기가구 대응 속도 향상 |
| 경북 청송군 |
문서 열람 시스템 SaaS 전환 |
노후 문서열람 솔루션을 SaaS 방식 문서뷰어로 바꾸어 별도 프로그램 설치 없이 행정문서를 웹에서 열람 | 초기 구축비·유지관리비 부담 감소, 군민·방문자의 정보 접근성 향상, 소규모 지자체 디지털 포용 실현 |
지방공공기관에서의 적용 가능성과 준비 과제
지방공공기관이 수행하는 상·하수도, 도시철도, 환경·에너지, 복지·보건, 주택·임대, 시설관리 업무는 모두 주민과 시설 상태 변화가 축적되는 구조다. 이 특성은 구독형 행정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상수도에서는 검침·누수 데이터를 결합해 취약 구간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주택·임대 분야에서는 체납·민원·에너지 사용 변화를 통해 주거 취약가구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교통·도시철도에서는 승하차 패턴과 설비 상태를 반영해 점검 시기를 정밀하게 조정하고, 수자원·환경 분야에서는 수질·기상 자료를 연계해 홍수·가뭄을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구독형 행정의 전환이 의미하는 바는 행정 개입의 ‘속도와 방식’이 바뀐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민원·사고 발생 이후 대응이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위험 신호가 나타난 시점에서 행정이 먼저 움직인다. 이를 통해 시설 안정성, 서비스 품질, 행정 신뢰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
다만 이 변화는 단순한 시스템 업그레이드로는 가능하지 않다. 기관·부서 간 데이터를 연계하려면 공통 표준과 규칙이 먼저 정립돼야 하고, 개인정보 활용에는 명확한 동의와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구독형 행정은 초기 구축보다 운영·분석·개선에 더 많은 인력과 예산이 필요한
구조이기 때문에 단년도 예산 틀 안에서만 접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데이터 분석 결과를 행정 판단에 반영할 수 있도록 조직 내 학습과 문화적 합의가 병행돼야 한다.
표 2. 지방공공기관 우선 적용 분야 및 기대 효과
| 적용 분야 | 활용 데이터 예시 | 적용 가능 모델 | 주민 체감 가치 |
|---|---|---|---|
| 상·하수도 | 검침 정보, 시설 상태, 누수 이력 | 누수 위험 자동 알림 · 시설 진단 예약형 서비스 | 공급 중단 · 누수 피해 사전 예방 |
| 도시철도·교통 | 승하차 패턴, 설비 점검 기록, 사고 통계 | 혼잡 기반 안내 · 예방정비 자동 스케줄링 | 안전성 강화 · 대기시간 감소 |
| 환경·에너지 | 기상, 토양, 배출량, 소비량 데이터 | 기후위험 조기경보 · 탄소저감 연계 서비스 | 재난 위험 감소 · 요금 절감 |
| 복지·돌봄 | 의료, 소득, 체납 데이터, 고립 신호 | 위험 가구 자동 탐지 · 지원 안내 연동 | 지원 누락 방지 · 돌봄 접근성 강화 |
| 주택·임대 | 체납, 민원, 사용량 변화 기록 | 취약가구 조기 탐지 · 상담 연계 | 주거 안전 확보 · 사회적 고립 예방 |
| 관광·문화 | 방문 흐름, 예약 기록, 행사 참여 데이터 | 지역 맞춤 추천 · 혼잡도 기반 운영 | 방문 편의 증가 · 지역 소비 촉진 |
단계별 도입 전략과 향후 지방공공기관의 방향
구독형 행정은 한 번에 구축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우선 각 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점검하고, 핵심 분야별 공통 지표와 표준 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출발점이다. 그다음에는 범위가 좁고 효과가 빠르게 확인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문서 열람 시스템의 SaaS 전환, AI 기반 복지 사각지대 발굴과 같은 사업은 주민과 현장이 변화를 직접 체감하기 좋은 영역이다. 시범 운영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스템과 제도를 조정하면 이후 확산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확산 단계에서는 부서 간, 기관 간 연계가 중요해진다. 광역·기초지자체 및 공사·공단 간 공동 플랫폼을 구축하거나 중앙정부의 공통 인프라를 활용하면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 이후 각 지역의 산업구조와 환경 조건에 맞춘 맞춤형 서비스 모델을 개발해 고도화하면 구독형
행정은 지속 가능한 운영 단계에 들어선다.
이 과정에서 행정 시스템은 단순한 업무 처리 도구가 아닌 서비스 제공 플랫폼으로 재구성돼야 한다. 무엇보다 구독형 행정의 목적은 주민의 신뢰와 체감 개선이다. 주민의 위험을 줄이고, 권리를 놓치지 않도록 안내하며, 불편을 줄이는 경험이 쌓일 때 구독형 행정은 기술을 넘어
행정 철학의 변화로 자리 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