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보기 E-Book
지난호보기 E-Book
우리는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살다, 읽다, 쓰다」
“여러 번 읽게 되는 책이 있고, 한 사람의 정신 일부를 구성하는 책이 있고,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책이 있고, 전체를 꼼꼼히 다 읽지 않고 겉핥기식으로 대충 읽는 책이 있고, 한자리에서 다 읽고 나서 일주일 정도 지나면 다 잊어버리는 책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책을 읽든 돈이 든다.” -『책 대 담배』중에서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마음의 양식, ‘책’에 대해 조지 오웰이 「책 대 담배」라는 에세이소품에 쓴 구절이다. 한때는 그저 책에 흠뻑 빠져서, 언젠가는 취미 삼아, 지금은 업으로 삼으며 많은 책들을 만나고 있는 내게 조지 오웰이 쓴 책에 대한 문장이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마음에 와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1984』와 『동물농장』을 남긴 위대한 소설가인 동시에 책을 쓰고, 팔고, 빌리고, 사본, 오웰의 생계형 책 생활자로서의 진솔한 면모를 느낄수 있어서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필수이고, 어떤 사람은 굳이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의 기호품이 되기도 하는 ‘책’이라는 특별한 존재. 그중에서도 수세기가 지나도 사람들이 찾아 읽는 위대한 고전에 대하여 우리는 왜 그렇게도 읽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또 읽어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걸까. 아마도 그 누군가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읽었을 때 크고 작은 하나의 승리를 맛보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 스스로 고전 읽기를 시작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몇 시간이고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인터넷과 유튜브를 들여다보긴 쉬워도 고작 30분간 책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재미삼아 읽는 것이 아니라 고전의 세계에 진지하게 발을 들이고자 한다면 더더욱. 이것이 잊을 만하면 고전 길잡이 책이 나오곤 하는 이유이리라.
“사람은 무릇, 책을 읽어야 사람이다”
이미지
한 번뿐인 삶을 살면서 모든 것을 경험할 수는 없기에 우리에게는 책이 필요하다. 한창 공부를 하던 2011년,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태어나서 가장 원초적인 실존으로 돌아간 그때, 책의 삶이 얼마나 숭고한 실존인지를 깊이 깨달았다는 작가가 있다. “사람은 무릇, 책을 읽어야 사람”이라는 진실. 소설가 김연경의 『살다, 읽다, 쓰다』라는 책은 고전과 함께 살고, 읽고, 쓰며 나아가자고 이끄는 고전 길잡이다.
이 책을 열기 전에 잠시 저자의 이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편집과 장편 소설을 출간한 소설가이자 러시아 문학 번역가인 김연경은 십여 년을 세계 문학에 몰두하며 지냈다. 네이버 문학 캐스트와 여러 지면을 통해 세계 문학을 독자들에게 소개했고 2016년부터는 서울대에서 소설 창작 강의와 문학 읽기 강좌를 맡아 가르치는 등 현장에서 많은 이들에게 독서의 폭을 넓히는 길잡이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살다, 읽다, 쓰다』는 기원전 작품부터 현존하는 작가의 작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80여 편의 고전을 선정해 세계 문학 전반의 독서를 안내한다. “일찌감치 아버지의 바람인 법조인의 길 대신 전업 작가를 선택해 실로 짐승 같은 필력을 뽐내며 어마어마한 양을 써 댔”던 발자크, “아버지의 교육열과 문화적 열망을 그대로 이어받아 시쳇말로 중산층의 윤리를 체화”한 괴테, 작품의 묵직한 고뇌와 달리 “도쿄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수재로서 100편이 훌쩍 넘는 단편 소설을 남기기까지 비교적 무난한 삶을 살았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열 살 무렵부터 구두약 공장에서 일하다가 법률 사무실의 서기, 법원의 속기사, 의회 담당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던 디킨스, “부유한 귀족 집안 출신에 병약한 체질, 29년의 짧은 삶,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 끊임없는 떠남의 욕구,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낭만화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노발리스…….
소설가 김연경은 당대 최고의 작가들을 마치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인양 조곤조곤 그들의 사생활을 들려준다. 어째서 발자크가 세상의 속물스러움에 천착했는지, 디킨스가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동화적인 이야기를 써 낼 수 있던 원인이 저절로 이해가 된다. 유수한 작가와 세계 고전 작품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절로 스며들게 되는 이유다.
깊고 풍요로운 고전의 세계로 나아가는
작은 한 걸음
『살다, 읽다, 쓰다』
“누군가에게는 ‘하강’일 수 있는 문학이, 경상남도 거창군의 으슥한 산골에서 의무 교육만 간신히 받은 농부의 장녀로 태어난 나에게는 시종일관 ‘상승’이었다. … 정녕 마지못해, 하루 두 갑의 진정한 골초에서 비흡연자가 되었다. 출산 이후에는 흡연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담배를 안 피워도 나는 사람이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라고 『살다, 읽다, 쓰다』의 서문에 밝힌 김연경, 『책 대 담배』에서 책에 한 해 25파운드를 쓰고, 담배에는 40파운드를 썼다고 밝힌 지독한 애연가 조지 오웰.
책과 담배를 사랑하고 책을 일생의 기호로, 또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든,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두 작가의 글을 살피다 보면 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맞닿은 구석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가 김연경이 10년간 공부하며 추천한 세계 문학 목록들을 하나하나 읽어 나가다 보면, 고전이야말로 우리의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인류 문명의 빛나는 유산임을 깨닫게 된다. 읽고 쓰는 법을 배운 순간부터 단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만났다고 회고하는 김연경은 “책을 통한 공부는 내 인생의 전부였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여전히 모범생일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 말에 물개박수를 치며 적극 동의한다. 좋은 길잡이를 곁에 둔다면 모범생이 되기란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미지
김혜원
민음사 편집부장
youtube

(우) 06647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30길 12-6 (지번) 서초동 1552-13

Copyright(c) Evaluation Institute of Regional Public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